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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소중히 여기고 그 가르침을 따르고자 하는 이들에게

[서평] ‘오직 성경’ 원리로 사역하고 헌신한 백영희 목사 |

조회 313|2019-05-22

책벌레

 

 


 

백영희 연구

김남식 | 베다니 | 254쪽 | 15,000원

 

저자 혜강 김남식 박사가 머리말에서 밝힌 바와 같이 “한 사람의 삶과 사상을 평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6쪽)”.

 

일반적으로 한국교회사에서 백영희는 ‘극보수 신앙공동체 지도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러나 보수적 신앙운동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 외에, 백영희에 대한 이해는 매우 제한적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본서는 지금까지 ‘미지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는 백영희에 대한 흥미진진하고도 학문적인 탐구이다. 저자는 ‘개인사적(個人史的) 측면과 교회사적(敎會史的) 측면을 아울러 포괄’하면서, 백영희의 저서와 그에 대한 연구물들을 바탕으로 하여 문제를 천착하였다.

 

저자는 집필 목적을 간단명료하게 밝히고 있다. “본서의 목적은 백영희에 대한 인물사적(人物史的) 연구를 통해 성경적 바른 신앙의 실체를 규명하고 이것이 목회 현장에 어떻게 구체화되는지를 탐구하는데 있다. 본서에서는 백영희에 대한 연구를 집중한다.”

 

저자는 2부 ‘백영희 연구’에서 “한국교회사에서 백영희는 누구인가?”라고 묻는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그는 극보수 신앙공동체 지도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백영희는 1910년 7월 29일 경남 거창군 주상면 도평리에서 아버지 백남칠과 어머니 장판임의 7남매 중 2남으로 태어났다. 백영희는 9세 때(1918년)부터 서당에서 3년간 한문을 배웠고, 11세에 야학에서 2개월간 신학문을 배우다 1920년 7월 웅양공립보통학교 1학년에 입학했다. 그러나 5학년 2학기 말 경제적 사정으로 자퇴했다.

 

백영희는 1937년 1월 31일에 호주장로교 선교사 토마스 코트렐 목사(한국명 고도열, 高道悅)에게서 세례를 받았다. 백영희는 성경을 배우고 싶어 1938년 1월 18일 진주성경학교에 입학해 예과와 본과 1학기를 공부하지만, 건강 때문에 공부를 중단했다. 짧은 기간의 공부이지만 이곳에서 최상림 목사의 가르침을 받았고, 권임함(Cunningham) 목사의 감화를 받았다.

 

백영희는 평생 목회자로서 헌신의 삶을 살았다. 저자에 따르면 “백영희의 신앙 형성과 헌신에는 거창교회 주남선 목사의 영향이 컸다.”

 

백영희는 1950년 6월 2일 고려신학교에 입학하고, 1952년 7월 27일 부산 서부교회에 부임함으로써 새로운 사역의 장이 펼쳐졌다.

 

저자에 따르면 백영희의 사상은 한 마디로 ‘성경주의’이다. “성경을 대할 때는 그 한 말씀 앞에 엎드려 하명을 기다리되, 성경은 명령하고 우리는 순종해야 한다.”

 

그는 성경책을 대하는 자세와 태도를 극히 조심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자신의 신앙이 어리면 성경 ‘책’까지도 조심해서 대하는 것이 유익하다는 것이다.

 

백영희에 의하면, 성경 해석은 성경과 성령이 최종 권위이다. 성경 해석은 성경과 성경 안에 역사하는 성령으로만 해석하는 것이 옳다. 즉 성경은 자기 속의 성령의 감화와 감동으로만 깨닫는 것이다.

 

백영희에 의하면 성경의 보편성이란 “믿는 사람이라면 어느 시대나 어느 민족이나 어느 환경에 있다 해도 자기 신앙양심을 써서 노력하면 누구든지 성경을 바로 깨닫고 또 다 깨달을 수 있도록 성경을 기록할 때 그렇게 되어지게 했다는 뜻이다.”

 

특이한 것은 백영희 목사가 “성경 해석에서 원어를 강조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한 점이다. “말씀은 히브리어와 헬라어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성경 원어를 바로 알아 성경을 바로 깨달을 수 있다는 주장이 현 교계에는 너무 지나치게 과장되고 인식되어 있다. 주로 신학의 직업 문제와 연관이 많고 또 전문가들이 자기 존재를 지나치게 과시하려는 것도 그 이유나 배경이다.”

 

백영희에 의하면 “성경은 평범한 사람이 자기에게 주신 형편과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고 또 양심을 쓰면 자기에게 필요한 구원도리를 깨닫는 일에 모자람이 없다는 것이 성경의 보편성이다.”

 

‘보편성’이라는 말은 평범한 사람이라도 상관이 없다는 말이지,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나태와 무지 자체가 성경을 깨닫는데 도움이 된다는 뜻은 아니다. “평범한 사람이라도 그 주어진 환경에서 자기 충성을 다하고 양심을 쓴다면, 자기 신앙에 필요한 깨달음에는 부족함이 없다는 뜻이다.”

 

백영희의 교회론은 ‘개교회주의’이다. “백영희 신앙 노선에 의해 1960년대부터 나타난 교회 체제를 공회 체제라고 한다. 공식 명칭으로 사용할 때는 ‘총공회’ 체제라고 하는데, 그 운영 원칙은 성경의 법을 실제 현실 교회의 정치 기준으로 삼고, 정치 형태는 개교회주의를 근본으로 하고 있다.”

 

공회 체제에는 3대 원칙이 있다. 그것은 ①성경법 유일주의 ②개교회 신앙자유주의(전원일치 결의제도) ③교권 배제주의다. 이것은 “성경만으로 교회 운영의 법을 삼고, 그 외 각 교단이나 교파가 헌법이나 여러 가지 형태로 가지고 있는 각종 명문법 규정들을 하나의 참고로만 삼지, ‘법’으로 삼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이다.”

 

교권 배제주의는 바꿔 말해 ‘인간 권위의 배제 원칙’이다. “성경 권위만 교회의 유일한 권위로 확정짓는다면, 자동적으로 교회는 교회 체제에서 고정적 직책이나 권한을 부여하는 일을 삼가야 한다. 예를 들어 목회자나 총회장이라는 자리에 항상 주어지는 권리나 권한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또 직책에 관계없이 어느 한 개인에 대하여 항상 그에게 주어지는 권리나 권위를 인정해서는 안 된다.”

 

목회의 경우, 백영희는 “1939년 고향인 거창 개명리에서 장년 남녀 8명을 놓고 무보수 목회를 시작하여 1989년 8월 27일 순교하기까지 만 50년을 목회 하였다. 그러므로 목회는 그의 전생애를 통한 헌신의 징표였다.”

 

특히 그의 주일학교 사역은 특별하다. 서부교회 주일학교 반사들은 토요일마다 자기반 학생들 집으로 찾아가서, 지난주 배운 것을 확인하고 주변에 함께 교회에 나올 학생들을 찾아 전도했다.

 

반사들은 오직 전도로만 자기 반을 만들었다. 특이한 것은 아이들을 유치반이나 학년별로 구분하지 않고 한 반에 통합시켜 시청각 교재 없이 ‘공과’로만 성경을 가르친 점이다(110쪽). 백영희는 반사를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직책으로 여기고, 직접 챙겼다. 또한 주일학교 공과를 직접 작성하여 교육하였다.

 

백영희의 설교는 성경 중심이었다. 이것을 녹취하여 목회설교록으로 간행하였는데, 매 권 500-600쪽 분량으로 총 182권이 간행됐다. 이것은 기독교 역사에 유례가 없는 특이한 것으로, 문서를 통한 복음전도의 가능성을 제시하였다(116쪽).

 

저자에 의하면 백영희 사역의 영향은 여러 가지로 규명할 수 있으나, 총공회 조직과 인재 양성으로 집약될 수 있다.

 

1966년 5월 26일 목요일 부산 서부교회에서 제1회 공의회가 개최됐다. 당시 공회 회의록을 통해 공회를 가장 잘 파악할 수 있다. 당시 공회는 일반 교회의 최소 사례를 참고해 출발했으며 매사 성경으로 바른 길을 찾아 고쳐 나갔다.

 

인재 양성에 있어 백영희는 1968년 기도 중 이미 교역자 양성에 대해 가르침을 받고 마음 속으로 계속 기도하며 준비 중이었다.

 

“공회의 출발과 더불어 본격적으로 목회자를 가르칠 수 있는 교수를 기르기 위하여 먼저 공회 내부에 실력을 갖춘 몇몇을 미국 정통 신학교에서 중요한 과목을 배워오도록 했다(130쪽)”.

 

그러면 백영희 목사의 ‘신앙 노선’ 성격에 관해 저자는 어떻게 평가하는가? “백영희는 원래 신앙 시작부터 인간적 도움보다는 성경과 성령의 인도를 따랐던 인물이다. 굳이 인간적 모습에서 가장 영향을 많이 끼친 인물을 든다면 두말 할 것 없이 주남선이다. 주남선의 신앙 계열이며 주남선의 신앙을 그대로 잇는 수제자라고 표현한다면 정확한 표현이다(143쪽)”.

 

저자는 제3부 ‘백영희의 신학사상 연구’에서 백영희의 구원론을 심도 있게 다룬다. 백영희에 따르면 구원은 집을 짓는 것 같이 점진적으로 완성되어 가는 것이다. “집을 지을 때 먼저 터를 닦고 그 위에 집을 짓는 것같이 구원에도 터가 있고 집이 있는 것이다.”

 

 

▲백영희 목사.

 

 

백영희는 ‘기본 구원’과 ‘건설 구원’이라는 말로 설명한다. “기본 구원은 모든 사람이 공통적으로 받는 것이다.” 기본 구원은 하나님의 예정을 따라 하나님의 사랑으로 전적 은혜로 선물로 받은 것이다.

 

건설 구원은 인간의 자유와 책임을 따라 예수님의 공로에 의하여 모든 사람이 개별적으로 받는 것이다(160쪽). 백영희는 1950년대부터 기본 구원과 건설 구원을 구분하여 가르쳤다.

 

저자에 의하면 “백영희가 기본 구원의 완전과 건설 구원의 안전을 주장한 것은 구원의 영생과 완전을 잘 파악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기본 구원은 하나님이 완성하신 것이고 건설 구원은 믿음의 분량만큼만 완전한 것이다(172쪽)”.

 

저자에 의하면 “백영희의 신학 사상은 특이한 언어 표현으로 인해 일부 사람들에게 오해를 받고 또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세월이 흐름에 따라 그의 사상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져 지금은 문제를 삼는 사람이 없는 실정이다(230쪽)”.

 

백영희의 신학 사상을 요약하면 첫째, 하나님 중심주의이다. 이것은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신봉하는 자세였다.

 

둘째, 성경 제일주의이다. 이것은 백영희 신학의 근간이며 목회의 원리였다. 백영희는 천만인이 좋다고 해도 성경이 ‘아니오’ 하면 성경의 원리를 따랐다.

 

셋째, 교회 사명주의이다. 그는 교회를 조직이나 정치기구로 보지 않고, 그리스도의 몸이요 성도의 공동체로 보아, 각 교회의 특성을 강조하여 이른바 개교회주의 원리를 제시하였다. 이것이 백영희 교회론의 특성이다.

 

백영희의 신학사상은 제자들에 의해 정리되고 체계화됐다. 저자는 그의 사상에 대한 종합적 연구가 무엇보다 필요하며 계승과 보완의 원리를 살려나가야 한다고 조언한다.

 

끝으로 저자는 “백영희는 ‘오직 성경’이라는 원리 속에서 사역하고 헌신하였다”라고 백영희 목사를 높이 평가하였다.

 

독자는 이 책을 통해 한국교회사에서 충분히 평가받지 못한 ‘백영희 목사’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의 독특하고도 심오한 ‘구원관’을 깊이 있게 살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청년 시절 간접적으로 백영희 목사의 영성을 접한 적이 있는 필자는, 매우 의미 있는 독서시간을 누릴 수 있었다. 성경을 소중히 여기고 그 가르침을 따르고자 하는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송광택 목사(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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