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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 복음으로 더욱 선명한 빛 드러낼 예수님 십자가

[크리스찬북뉴스 서평] 복음은 하나님 나라다 |

조회 316|2019-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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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는 십자가의 속죄가 중심 주제일까?

복음서와 서신서의 복음, 둘 다 하나님 나라

로마서 보는 관점도 하나님 나라 중심으로

수정될 때 신앙 의미 있고 더 풍성해질 것


로마서와 하나님 나라

안용성 | 새물결플러스 | 331쪽 | 17,000원


서론


성도는 십자가로 구원을 받는 사람이다. 속죄함의 은혜가 없다면 성도라 할 수 없다. 성도는 죄를 멀리하고 죄와 싸우는 사람이다. 죄와의 결별은 한 번에 이루어지지 않고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지속적으로 행해야 되는 전쟁이다.


믿음을 가지고 걸어가는 순례의 길에 성도는 자기 내면의 죄와 부단히 싸워야 하고, 외부의 죄에도 끈질기게 저항해야 한다.


예수님을 믿기로 결정한 순간, 자신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죄까지 모두 용서받은 것이라는 말은 더 이상 천국행 티켓을 손에 쥔 것처럼 해석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주님의 십자가 죽음은 우리에게 말할 수 없이 큰 은혜이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십자가의 죽음과 함께 예수님의 사생애와 공생애를 기억해야 하고, 십자가 이후 부활과 승천도 떠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십자가 위에서의 고통과 의미만 부각하고 강조하다 보면, 성경 전체를 흐르고 있는 복음을 놓칠 수 있다. 물론 십자가 위에서 죽임당한 예수님을 바라볼 때, 우리의 죄인 됨과 죄의 세력을 두려워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십자가의 속죄는 예수님의 생애의 한 부분이고 복음이 가지는 의미의 한 요소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까지 교회의 가르침이 십자가의 속죄만 강조되어 왔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 십자가의 의미와 목적이 드러나지 못하고 단지 구원받기 위한 방법으로 전락되어온 것 같다.


물론 구원에 합당한 자는 죄를 알고 죄 용서의 의미를 안다. 주님으로부터 많은 용서를 받은 자는 주님을 많이 사랑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십자가의 속죄가 신앙의 전부가 아니다. 그것을 포함하고 뛰어넘는 더 큰 개념이 있다.


믿음이란


이 책은 우리에게 복음을 더 크고 넓게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십자가의 놀라운 역사도 속죄로 그치지 않고 속량으로 이해시켜 준다.


성경이 가지는 복음과 십자가의 의미를 바르고 분명하게 제시해 주고 십자가와 죄 사함과 믿음의 중심이 되는 로마서를 새롭게 바라보게 도와준다. 자칫 우리의 신앙이 십자가에 갇힐 수 있는 위험에서 벗어나게 해 준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죄의 종에서 벗어나 자유하며 사는 것인데, 늘 죄에 머무를 수 있는 함정에서 피하게 해준다.


물론 우리가 예수님의 은혜를 알 때 용서받은 죄인이라는 의식은 분명히 새겨지고, 신앙생활을 할수록 죄에 대한 감각도 깊어지며, 자신의 무능함과 본성의 악함도 더 확실히 깨닫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 앞에 나올 때마다 울 수밖에 없고 주님의 십자가와 은혜로 살게 해달라고 간구하게 된다.


그러나 십자가의 속죄와 은혜가 거기에서만 계속 멈출 수 없다. 당연히 그 은혜와 감격의 깊이는 더 깊어져야겠지만 구원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그 지점에서만 맴도는 것은, 진정한 십자가의 목적과 거리가 멀다.


성도는 십자가의 사랑과 속죄를 믿는다. 그러나 그 믿음은 속죄로 제한되지 않는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삶에 주인이시고 왕 되심을 믿는 것이다. 십자가와 속죄라는 것을 교리적 수준으로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믿음의 전부라 오해해서는 안 된다.


믿음은 주님께서 주인 되시기에 우리의 생각이 변하고 가치관이 새로워지고 삶이 이전과 달라지는 것이다. 우리를 위해 죽으신 주님을 믿는다고 말로 끝내는 것은 불안하고 부족한 믿음이다. 믿음은 예수님이 주인 되신다는 삶의 증거와 열매들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은 지식적이고 단편적인 게 아니다. 믿음은 종합적이고 총체적이고 전인격적이다. 성령님의 놀라운 역사로 심겨진 믿음은 우리를 변화시키게 충분하지, 우리의 이해로만 끝나지 않는다. 주님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셨다는 진리가 충분한 의미가 되려면, 믿음의 정의를 바르게 내려야 한다.


믿음이란 살아있고 역동적인 것이다. 속죄라는 선 위에 멈춰 있어서는 안 된다. 속죄라는 것도 믿음의 행진을 더 가속화시키고 세상을 향해 저항하는 것이다. 그러니 속죄의 의미도 제대로 알아야하고 그것을 믿는 믿음의 정의와 역사도 분별해야 한다.



▲ⓒImage by 5hashank from Pixabay


누구의 지배를 받을 것이냐


로마서를 포함한 성경은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 마음대로 살라고 하지 않고, 성령을 따라 살 것인지 육체를 따라 살 것인지 선택하라고 한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기로 결단했다 해서 영원한 구원이 확실하게 보장된 것 같지 않다.


주님을 믿은 후에도 옛사람으로 돌아가지 말고 믿음에서 떨어지지 말라고 하는 것을 보면, 우리의 구원은 한 번에 이루어지기보다 지속적인 과정을 겪는다. 누구의 지배 아래 살 것인지 끊임없는 영적 싸움을 치른다.


그런 치열한 전쟁 속에 하나님을 향해 사느냐 육체를 따라 사느냐 하는 것은 우리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로마서는 죄의 지배 아래에서 벗어나 은혜의 지배 아래에서 사는 것이 성도라고 정의한다. 죄의 지배는 예수님을 거부하고 믿음과 관련 없이 살아간다. 죄에 종노릇하고 사망을 따라 살아간다. 죄의 지배는 죄의 열매들을 생산한다.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이 임금이 되고 나의 주인이 되면 그것에 매여 산다. 예수님을 안다 하고 믿는다 해도 어떻게 죄의 지배를 받을 수 있는지 의아해 할 수 있지만, 말과 행동은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


은혜의 지배 아래에서 사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것이다. 삶의 전 영역에서 주 되심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주님의 주인 되심을 인정하는 것이 노예처럼 종살이하고 자유를 박탈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진리 안에 자유하며 분명한 사명을 가지고 자녀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간다.


세상 그 어디에도 속박당하지 않고 신분 의식을 가지고 행한다. 은혜의 지배 아래에서 살 때 구원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며 살아갈 수 있다.


거룩한 삶을 살라


로마서는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 복음을 가르치며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새로운 사람답게 행하라고 한다. 이 세대는 악한 영이 통치하는 기간을 말하기도, 악한 통치자들을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다.


이 세대는 책에서 알려주는 파라오의 질서를 세우고 유지하는 주체이다. 파라오의 질서는 착취와 억압과 모순과 부정이 판을 치는 곳이다. 철저한 피라미드 사회이고 약육강식과 적자생존과 힘과 돈의 논리가 지배하는 곳이다. 살인과 광기와 어둠이 가득한 곳이다.


이 파라오의 질서는 사탄의 체계이다. 국가와 제도와 정부와 법과 여러 기관들을 통해 드러나는 강력한 힘이다. 이러한 시스템 자체가 죄는 아니지만, 이것을 작동시키는 보이지 않는 실체와 거대한 권세가 죄의 실체다.


하나님 나라 복음은 이러한 체제를 거부하고 저항한다. 하나님의 섭리를 믿으며 사는 것이 성도이지만, 그는 악의 세력을 향해 순종하고 협력하지 않는다. 오히려 죄를 고발하고 드러내며 싸우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질서는 파라오의 질서와 철저히 구분된다. 하나님은 인격을 무시하고 인권을 유린하며 다수의 고혈을 빨아 소수만이 독점하는 체제를 바꾸시는 분이다.


성도는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는데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질서를 회복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거룩한 삶이란 악한 것을 부정하고 죄를 멀리하는 것이고 선하고 아름다운 것을 가까이 하는 것이다.


성도는 파라오의 질서를 통찰할 수 있는 깨끗한 마음이 있어야 하고 평화를 향하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결론


로마서는 십자가의 속죄가 중심 주제일까? 복음서에서 말하는 복음과 서신서에 말하는 복음이 다르지 않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지만 서신서에서는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님이 선포된다고 전하는 게 다르지 않다.


복음서와 서신서의 본질은 똑같이 하나님 나라 복음이다. 그러니 로마서 또한 십자가의 속죄만 강조하기보다, 하나님 나라 복음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신학의 관점이 수정될 때, 우리의 신앙이 더 의미 있고 풍성해질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는 더욱 선명한 빛을 드러낼 것이다.


방영민 목사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서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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